1951년 8월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백석산. 최고 해발 1142m 높이 일대 산봉우리에서 국군 7·8사단과
북한군 12·32사단 장병들이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두 달 동안 고지를 뺏고 빼앗기기를 6차례.
나중에 미군과 중공군까지 가세, 전황(戰況)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병사들은 대부분은 스무살 안팎. 살아남는 것이 기적이라고 할 만큼 상황은 엄혹했다.
지휘관이 병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인식표(군번줄)를 꼭 차고 있어라"는 것이었다.
당시 어린 병사들은 그 말속에 담긴 뜻을 몰랐다.
두 달 동안 일대 산맥을 자욱한 포연(砲煙)으로 메웠던 백석산 전투는 2000여명 전사자(적군 1500여명·
아군 530여명)를 남긴 채 막을 내렸다.
6·25전쟁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졌으나 아직 전국 산야(山野)에 묻혀 있는 전사자 유해는 13만여구.
국방부는 유가족을 대상으로 유전자(DNA) 표본을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1만6052명이 등록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