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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시민의식

didduddo 2011. 3. 16. 09:05

3월 16일 수요일

우리 말도 떼지 못한 딸 아이가 일본에 살며 세살 때 배운 말은 차례, 순서를 뜻하는 '준반(順番)'이었다.

이 말을 가르쳐준 건 보육원 교사가 아니라 또래 아이들이었다.

놀이터에서 미끄럼을 타려던 아이들은 다투지 않고 "준반, 준반"을 외치며 줄을 서 차례를 기다렸다.

먼저 미끄럼을 타려던 딸도 어느새 '준반'을 외치며 줄을 섰다.

 

▶일본 엄마들은 "남에게 폐(迷惑·메이와쿠) 끼치지 말라"는 말로 가정교육을 시작한다.

지하철에선 "다리를 꼬거나 뻗으면 남에게 폐가 됩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하루 종일 나온다.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인들은 남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민감하다"고 했다.

남을 배려하고 자신은 절제하는 '수신(修身)문화'다.

일본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에는 '메이와쿠 방지 조례'라 하여 '남에게 현격히 폐를 끼치는 행위'는

법으로도 금하고 있다.

▶2009년 11월 부산 사격장 화재로 10명의 일본인 관광객이 숨졌을 때도 부산에 온 가족들은 통곡 대신

침통하게 무릎을 꿇은 채 흐느낄 뿐이었다. 자신의 슬픔을 드러내는 것조차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일본의 장례식은 조용하고 차분하다.

 

▶3·11 대지진에서 일본인이 보여준 배려와 시민의식에 세계가 감탄하고 있다.

외신들은 일본인의 인내와 질서를 '인류정신의 진화'라며 극찬했다.

다리를 다친 환자는 구조대가 도착하자 미안해하며 "나보다 더 급한 환자가 없느냐"고 물었다.

생필품이 부족해도 약탈이 없고, 수퍼마켓 앞에는 수백 m의 줄이 이어졌지만 새치기가 없다.

도쿄전력은 14일부터 지역별로 나눠 강제 정전을 하기로 했지만, 이날 오후까진 그대로 전기를 공급했다.

지하철 회사는 운행을 제한했고, 시민들이 가정과 직장에서 절전(節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티즌들은 "파친코와 유흥업소 사장님들. 조금만 참자"는 메시지를 올렸다.

 

▶"남편과 연락이 안 된다"며 애끊는 구조 요청을 할 때, 피난소 여인은 절규 대신 고개만 숙였다.

도로가 망가져 차가 다니지 않는 센다이 도로에선 시민들이 지금도 파란 불을 기다렸다가 길을 건너고 있다.

공영방송 NHK는 흥분하지 않고 뉴스와 피난 정보만 신속히 전했다.

일본인들은 지금 속에서 터져나오는 피눈물을 억누르며, 놀라운 의지로 시련을 견뎌내고 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