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남자들 중 열에 아홉은 군대를 다녀왔다. 요즘은 품질이 많이 향상되었지만, 과거 군에서 입는 전투복이나 내의류들은 몇 번 세탁하고 나면 축 늘어지고 물이 빠지는 경험을 흔히 했을 것이다. 작년에 문제가 된 전투화도 그 좋은 사례이다. 그러다 보니 민간에서 값비싼 제품을 사용하다 입대한 신세대 장병들의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최고 품질의 등산화를 만들 수 있는 나라에서 왜 전투화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걸까?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 관심의 부족이다. 무슨 사건이 터질 때면 여기저기서 말은 하지만, 예산문제에 첨예하게 들어가면 결국 무기체계 위주로 돈을 배분하게 된다. 지난 천안함 사태 때 고 한주호 준위가 수중수색 중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때는 우리 군인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잠수복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지만, 연평도 포격도발 때는 북한의 해안포를 격파하고, 적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새로운 첨단 무기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이제는 병사들이 먹고 입는 데도 관심을 둬야 할 때이다. 적을 압도할 수 있는 스텔스 전투기나 미사일 등 첨단무기 도입도 중요하지만, 병사들 입장에서는 당장 먹고 쓰고 입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또 첨단무기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직접 운용하는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져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이렇듯 병사들이 평소에 먹고 쓰는 각종 식품류나 군복·전투화·차량 등을 총칭해서 비(非)무기체계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적 수준의 성능을 자랑하는 무기체계에 비해 상당히 뒤떨어져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IT나 고기능 섬유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민간분야의 참여를 적극 유도한다면 단기간에 품질이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 올해부터 전군에 보급되는 신형전투복은 국방부와 지식경제부가 협력해 개발했다. 이처럼 민군(民軍)협력체계를 구축하여 첨단 섬유재질이나 차세대 소재 등을 공동개발해 나간다면 민간분야도 군이라는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수 있어서 상호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 면에서도 우수한 군수품은 민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60만이라는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값싸고 질 좋은 방탄복이나 전투차량 등 다양한 비무기체계를 개발한다면 중동이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해외수출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