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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벌판 얼음 봉우리 아래 영글어 가는 前線의 아들들

didduddo 2011. 1. 18. 11:05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작된 맹추위가 벌써 4주째 이어지고 있다. 서울 기온이 10년 만에 영하 17.8도까지 내려갔고 부산은 96년 만의 영하 14도 한파에 낙동강이 얼어붙었다. 날벼락 추위라는 말까지 나왔다.

16일 기상대가 측정한 전국 최저 기온은 철원 24.3도였지만 그보다 훨씬 추운 곳이 많았다. 기상대 손이 미치지 않는 최전방 고지와 군부대들이다. 이날 새벽 강원도 양구가칠봉, 철책을 지키는 초소의 수은주는 영하 32도를 가리켰다. 바람까지 감안한 체감온도는 영하 50도 아래로 떨어졌다. 다른 전방지역 최저기온과 체감온도도 화천 적근산 영하 28도·43도, 인제 향로봉 영하 26도·33도, 연천 금학산 23도·30도, 백령도 영하 13도·21도를 기록했다.

초병(哨兵)들은 막사에 있다가 바깥으로 나서면 머리가 "쨍"하고 깨질 것 같다고 말한다. 살을 에는 바람에 뺨은 호되게 얻어맞은 듯 아프고 광대뼈까지 아리다. 눈꺼풀이 얼어 내려앉으면서 눈 뜨기도 어렵다. 소총을 맨손으로 만지면 손가락이 찰싹 달라붙으면서 동상에 걸리기 때문에 꼭 장갑을 끼고 만져야 한다.

요즘 최전방 부대 막사는 자동 보일러를 놓아 실내온도 20도를 유지한다. 언제든 뜨거운 샤워를 할 수 있다. 세탁기에 건조기까지 갖춰 곱은 손 불어가며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된다. 보초를 설 때도 속옷, 두툼한 위아래 겨울 내의, 겨울 전투복, 기능성 방한 내피와 외피, 방탄복에 목 토시까지 겹겹이 껴입는다. 방한두건에 장갑도 세 개씩 낀다. 가장 추울 때 입는 D형 복장이다.

그래도 마스크로 배 나온 입김이 곧바로 얼어 하얗게 성에가 끼고, 핫팩을 넣고 나오지만 세 겹 장갑 낀 손이 금세 시리다. 몸속을 파고드는 추위만 추위가 아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눈벌판과 얼음 봉우리가 부모 품을 처음 벗어난 이들 가슴을 더 얼어붙게 만든다. 가칠봉 소초장(小哨長) 박형환 소위는 "외동이도 많고 곱게 자란 신세대 병사들인데도 생각보다 인내심이 강해 잘 견디고 있다"고 전했다.

다들 춥다며 등을 오그리고 다니지만 전선의 추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군복무를 하는 젊은이들은 80년대 말, 90년대 초 태어났다. 너무 연약하다고 다들 걱정하던 젊은이들이다. 그 아들들이 지금 혹독한 추위 속에서 야무지게 영글어 가고 있다. 두 해 겨울을 이렇게 견뎌내고 우리 곁에 돌아올 때 그들은 몰라보게 믿음직한 청년이 돼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