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군화도 못 만들면서

didduddo 2010. 10. 4. 09:27

10월 4일 월요일(-287)

몇년 전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과 군에 다녀온 남성들의 눈물을 자아냈던 사진 한 장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병사들이 행군을 하다 발바닥이 전투화에 짓물러 물집들이 생겼고 이 물집들이 터져 발바닥에 큰 상처가 난 모습이었다.

이 사진은 군에서 낙후된 전투화 때문에 고생했던 많은 남성들의 추억을 되살리고 10~30년 전에 비해 나아지지 않은 데 대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에 앞서 국회에서도 전투화 등 장병들이 입고 신는 피복장구류 문제가 국정감사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곤 했다.

국방부와 군 당국에서도 나름대로 개선 노력은 해왔다. 장병 피복장구류 개선 10개년 계획을 세우고 신형 전투복, 전투화 등을 선보였다. 지난 3월엔 김태영 국방장관과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간에 '국방섬유 기술협력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리 민간부문 섬유 기술을 장병들의 피복에 적용해 군 전투력과 장병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최근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11개 전투화 제조회사가 올해 납품한 신형 전투화 중 5개사에서 납품한 5201켤레가 접착력이 약해 밑창이 떨어지는 불량이 발생한 것이다. 국방부는 감사 결과 방위사업청 등의 일부 관계자들과 업체 간에 유착의혹까지 나타났다면서 수사를 의뢰했다.

전문가들은 장병 피복장구류 문제가 군 당국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구조적인 문제다. 현행 법령상 군 피복장구류는 대부분 군인공제회, 재향군인회, 보훈단체 등의 산하 업체들이 수의계약으로 납품한다. 6·25전쟁과 베트남전 등에서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어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나 후손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줘 조금이나마 보상하자는 취지다.

수의계약으로 계속 납품이 이뤄지다 보니 경쟁계약의 형태를 취할 때보다 품질개선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국가유공자들에게 다른 형태의 적절한 보상을 하는 보완책을 마련하면서 군수품 납품은 경쟁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적지 않다. 군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의 피복장구류 납품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계속 쌓이면 결국 국가유공자들에게도 누(累)가 되는 만큼 범정부 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때가 됐다"고 말했다.

국방예산 중 피복장구류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 있는 것도 문제다. 피복 예산의 경우 증액률이 2008년엔 0.4%, 2009년엔 0.9%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올해 10%가 증액돼 2182억원이었다. 야심찬 국방개혁의 틀을 한창 짜고 있는 대통령 직속 국방선진화추진위에서 추진 중인 53개 과제에서도 장병 피복장구류 개선 문제는 빠져 있다고 한다.

군 관련 여러 사안 가운데 인터넷에서 가장 많고 격렬한 댓글들이 달리는 것이 피복장구류 관련 문제다. 정부와 군 당국은 정반대로 이 문제에 가장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인간의 기본 3대 요소는 의식주(衣食住)이고 이는 군인이라고 결코 다르지 않다. 그중에서도 제일 앞에 있는 '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국방개혁을 하겠다는 것인가. 세계 최고 수준의 전차·장갑차를 만들어 줘도 그걸 다루는 군인들의 사기가 형편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