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3일 오후 3시 강원도 고성 DMZ 안. 남북을 가르는 최종 경계선인 군사분계선(MDL) 코앞까지 갔을 때
MDL로부터 불과 250m 떨어진 북한 명호초소의 군인 3명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이리 오라우! 넘어오라우!"
초소에 묶여 있는 개들도 덩달아 맹렬히 짖었다. 현재 서 있는 곳에서 MDL까지의 거리는 10m.
북한 군인의 말대로 몇 발짝만 더 가면 북한으로 '넘어갈' 수 있는 위치인 것이다.
DMZ 안에서 따져도 최전방. 군인들도 가기를 꺼리는 이곳까지 MDL 푯말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본지 정경열 기자가 다가갔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쪼개 놓은 MDL은 철조망이 아니라 300~500m 간격의
푯말 1292개로 듬성듬성 표시돼 있다. 취재팀은 DMZ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촬영이 가능한 푯말을 물색한 끝에
금강산 관광객들이 이용하던 동해선 도로변의 1290번 푯말을 찾아냈다.
DMZ를 통과하는 동해선 도로는 금강산 관광객들이 차를 타고 오갈 수 있지만 촬영이나 도보 이동은 엄격히 금지돼왔다.
동해선 도로 왼쪽 나무 덤불 사이에 선 푯말은 시멘트 기둥뿐이었다. '
군사분계선'이라고 앞면(남쪽 방향)에 한글과 영어로, 뒷면(북쪽)엔 한글과 중국어(한자)로
적혀 있어야 할 노란 철판은 사라진 채였다. 도로 위 남북을 경계로 금이 가 있는 자국이 푯말을 대신해
MDL임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남북이 각각 MDL까지만 아스팔트 공사를 맡아 맞닿은 부분의 높이가 달라져
자연적으로 금이 생긴 것이다.
동행한 경계병들은 "커다란 카메라가 북한군을 자극할 수 있으니 북쪽으로는 들이대지 말라"고 했다.
실질적인 남북 분단선인 MDL은 정전협정 제1조 1항에 '한 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선으로부터 2㎞씩 후퇴함으로써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한다'는 내용에 명시돼 있다.
협상 당시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접전선을 따라 서쪽 끝 임진강변(1번)부터
동쪽 끝 동해안 해변(1292번)까지 총 248㎞ 구간에 똑같은 모양의 푯말을 세웠다.
북한·중국측이 596개, 유엔군측이 696개씩 나눠 유지·관리하는 것으로 돼 있다.
70년대까지는 넘어진 푯말을 세우고 보수하기 위해 군인들이 주기적으로 MDL까지 갔지만
수리하던 우리 군인들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전사하는 일들이 생기면서 중단됐다.
이후 오랜 세월 동안 푯말들은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DMZ 내부에 불을 질러 시야를 확보하는
화공작전으로 소실됐고, 풀숲이 우거져 대부분 가려졌다.
현재 DMZ 안에서 군인들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푯말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경기도 연천 25사단의 이모 상사는 "예전엔 남북 군인들이 '영토 확장'한다며 MDL 푯말을 뽑아
더 먼 곳에 박아놓고 오기도 했지만 10년쯤 전부터는 아예 근처에도 가지 않게 됐다"고 했다.
강원도 철원지역의 한 사단장은 "MDL이 선으로 꼼꼼히 표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발적으로라도 넘게 될 경우 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며 "
교전이 일어날 만한 상황을 피하려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점점 접근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 군사분계선을 가로지른 푯말들. 고성에서 근접 촬영한 푯말은
그러나 파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DMZ지역에서는 DMZ 내부 수색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평야지대인 철원지역 DMZ 수색대원들은 "화공작전 직후 수풀이 다 탔을 때 GP에서
MDL의 위치는 추정만 하고 있지만 한겨울엔 글씨가 지워진 푯말 몇 개가 곳곳에 보인다"고 했다.
MDL이 푯말로만 표시되는 것은 아니다.
판문점에는 1976년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에게 살해당한 도끼만행사건 이후
폭 50㎝, 높이 5㎝의 콘크리트 MDL이 설치됐고 군사정전위원회와 부속 건물 주변으로
높이 1m의 콘크리트 기둥 59개가 10m 간격으로 세워져 MDL 역할을 하고 있다.
회담장 내부 바닥의 타일 선, 테이블 가운데 마이크를 꽂는 전기 콘센트와 깃발 위치까지도
MDL과 정확히 일치하도록 맞췄다. DMZ 특별취재팀